신변잡기

글을 잘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

영장류a 2021. 7. 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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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다.
익명게시판에 같은 주제로 글을 쓰면 다른 사람의 글은 조회수와 덧글이 폭발하는데 내 글은 폭망하는 것이었다.
현실세계에서 존재감 없는 나의 기운이 인터넷상에서도 똑같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
그 의문이 사실이라면 나의 글을 어떻게 써도 폭망한다는 슬픈 결론이 난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봤다.

'내 글쓰기가 뭔가 잘못되었나?'


그렇게 읽게 된 책이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 베껴쓰다보면 글을 잘 쓰게 된다는 제목만 믿고 읽었다.
읽다보니 내가 글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내가 쓴글의 문제점을 나열해봤다.
-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는 에피소드식 구성
- 문장이 길어진다.
-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비문)이 많다.


예문을 보며 어떤 글인지 함께 알아보자.

스물다섯의 나는 아직 어리다. 왜냐고? 여전히 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162센티미터였는데 올해 3센티미터 자라서 165센티미터다. 몸무게는 그대로 47킬로그램. 언니들은 "어떻게 하면 아직도 키가 크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내 이런 외모를 부러워한다. 솔직히 나는 한 10킬로그램쯤 찌고 싶다.
내 성격은 다혈질이다. 조금만 화가 나도 불같이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야기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첫인상은 새침하지만 알고 보면 왈가닥이서 '이중인격'이라 불리기도 한다.
나는 물이라는 물질의 성질을 좋아해서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게 좋다. 비 오는 날의 창문, 한강, 어딘가에 맺힌 물방울 등등. 모든걸 반영하고 모든 것에 자신을 맞추는 물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은 순수, 생명, 본질을 나타낸다.
나는 이런 본질에 대한 것이 좋다. 이질적인 단어 두 가지를 놓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어떤 정답도 없지만 나름의 생각이 정리되면 적어놓고 넘어간다. 이질적인 단어들에 대해 생각하다 그것들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지만 역시 정답은 없고 그때그때 상대적인 결론을 맺게 된다.
이런 생각은 나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괴감과 상실감 가득한 어떤 곳으로 데려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상을 시작할 때면 겁이 난다. 그 공상 끝에 난 '나는 왜 이런 생각으로 고민하는가?', '그래서 뭐 어떻게 살겠다는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후회하기 때문이다.
- 나원생


위의 글은 책에 있는 에피소드 플롯의 예시다.
에피소드 플롯은 이런식으로 독립된 이야기들을 아무 개연성 없이 이어 놓는 구성이다.
읽어보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나도 혼란해진다.
예시 글을 읽으니 민망해진다. 일기 쓸때 자주 저렇게 썼던 것 같다.
작가는 한번에 하나씩 이야기하라고 한다.
외모 / 성격 / 물 / 본질 각각의 주제를 다 넣지 말고 한가지 주제로만 쓰는 것이다.

나는 영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이곳의 수업 방식이 그곳과 달라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며 앞으로의 계획은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디자인한 것을 선보이고 싶다.


위의 글은 길게 이어서 쓴 글의 예시다.
처음에 나는 몇번을 읽어도 왜 잘못된 건지 이해가 안됐다. 그만큼 너무 익숙하게 잘못 써왔다는 것이다.
작가는 글을 잘게 나눠서 쓰라고 한다.

- 이곳의 수업 방식이 영국과 달라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디자인한 것을 선보이고 싶다.

주중에 나는 회사일과 업무상의 만남으로 이래저래 치이고 밟힌다. 그래서 주말을 기다린다. 주말에는 언제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이 글은 주어가 숨어있다. 숨은 주어 '나는'을 문장에 넣어보자.
'주말에는 (나는) 언제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이 글을 고쳐보자.
- 주말에는 언제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출근한다.
- 주말은 언제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위의 예시 말고도 내가 글을 얼마나 이상하게 써왔는지 깨닫게 되는 예시가 많다.
근데 그걸 다 얘기하면 책을 통째로 써야할 수준이다. (저작권 위반과 저품질에 걸리고 싶지 않다.)

여튼 작가가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는 기본은 간단하다.

- 쉽고 단순하게, 말하듯이 쓰라.

- 있는척하지 말아라.


책을 읽고부터 블로그 글 쓰는 것도 최대한 끊어서 쉽고 단순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베껴쓰기가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데 좋은 것인가?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갈고닦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베껴쓰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빨리 좋은 글을 쓰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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